아무것도 쥐뿔도 모르면서 앰프에 대한 열정 하나로만
회사를 만들겠다는 정신나간 짓을 한 적이 고등학교 때 있었고
1996년이 두 번째 였습니다.
당시 나사에 다니던 동창놈이 있었습니다.
미국 나사가 아니고 진짜 나사 만드는 공장입니다. 용산에요...
그 친구는 공장 맨 꼭대기층에 있는 화장실 한켠을 숙소로 이용하고 있었고
직원들이 모두 퇴근한 이후 밤에 기계를 만질 수 있었기에 제가 부탁을 했습니다.
앰프 전면판넬에 구멍을 내야 하는데 너희 공장 기계 좀 쓰자고요...
그래서 자재를 가지고 한밤중에 그 친구가 있는 공장을 방문했지요.
그런데 그 큰 기계가 구멍 하나 뚫지 못해 허덕이고 열이 펄펄 납니다.
10미리 알미늄 판넬인데 노브가 들어가냐 하니 뚫어야 하는 구멍의 지름이
좀 컸습니다.
친구는 "이러다 기계 망가진다....큰일 난다.....나 짤린다....."하면서
밤새 고생한 끝에 겨우 작업을 마무리 했습니다.
그 이후로도 밤에 몇 번 찾아가 기계를 빌려 썼지요.
그때는 케이스 까지 모두 수작업으로 만들어야 했던 시기 입니다.
그 고생해서 만든 앰프가 이것입니다.
나사 사장님, 죄송하고 감사 드립니다.
이때를 생각하면 도와줬던 친구에게 고맙다는 생각이 항상 듭니다.
그 친구는 얼마 되지 않아 미국에 가서 결혼하고 잘 정착해서 산다는 소식을 들었지요.
이렇게 해서 리비도(구 소리사이)가 탄생합니다.
돌이켜 보면 수 많은 일들을 겪었고 아마 앞으로도 그러할 것입니다.
비인기 산업인 오디오 시장에서 먹고산다는 것은 인생의 많은 부분을 포기해야 하고
실제로 창업했다가 사라지는 업체들을 수 없이 많이 봤습니다.
오디오를 너무 좋아해 미치지 않고서는 이 시장에서 버틸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내가 일반적인 회사원 이었다면 집도 사고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살지 않았을까?
또는 제대하지 않고 완전 말뚝 박았으면 내 인생이 어떻게 달라졌을까....
그래서 한 때는 부대에 재입대해 다시 출근하는데 몇 개월이 지나도 월급통장에
돈이 안들어오는 꿈을 꾼적도 많았고 그 정도로 월급쟁이가 한없이 부럽기도 했습니다.
어려울 때는 라면 하나로 하루를 버텨야 했던적도 많았고 월세를 못내 거리 밖으로
쫓겨나기도 했습니다.
이런 고난의 행군같은 시련이 제 인생의 반은 넘었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 남들 처럼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했고 가난이라는 의미보다 굶는다는 것이 더 두려웠습니다.
그럼에도 저를 붙잡아 준것이 앰프에 대한 욕심이었습니다.
사람은 욕심을 버리면 죽습니다.
그러니 앰프 연구에 대한 저의 욕심이 저를 살렸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지요.
이렇게 어려움이 파도 처럼 더가오는 현실 속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허리띠를 졸라 매는 것,
이것 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아직도 통신요금이 1만원 정도 나오는 폴더폰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스마트폰 사용은 저에게 사치이자 저 세상 물건입니다.
제가 돈을 쓰는 경우는 오로지 앰프설계나 제작에만 국한됩니다.
통장 잔고가 언제 또 빵 원이 될지 모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습니다.
지금 시점은 고생 끝에 제가 만족할 정도의 오디오 라인업이 구축되어
베이스가 단단해지고 있다는 것이 그나마 위안이 됩니다.
이번 저의 인생은 오디오, 앰프 연구가 전부였던 것 같습니다.
그것을 누가 알아주고 말고를 떠나서 말이죠...
그래서 스스로 이번 생은 망했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습니다.
가끔 제가 만든 앰프로 음악을 들으면 이런 생각이 듭니다.
"누가 만들었는지 소리 참 좋네, 그런데 왜 눈물이 날까?"
리비도 같은 앰프는 후대에 저 처럼 미친 놈이 나오지 않으면
인류역사의 진정한 마지막 하이파이 제품이 될 것이고
현재 상황으로 보면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농후해 집니다.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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