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오

인류 역사의 마지막 하이파이....

sorisai 2022. 12. 30. 11:52

아무것도 쥐뿔도 모르면서 앰프에 대한 열정 하나로만

회사를 만들겠다는 정신나간 짓을 한 적이 고등학교 때 있었고

1996년이 두 번째 였습니다. 

당시 나사에 다니던 동창놈이 있었습니다.

미국 나사가 아니고 진짜 나사 만드는 공장입니다. 용산에요...

그 친구는 공장 맨 꼭대기층에 있는 화장실 한켠을 숙소로 이용하고 있었고

직원들이 모두 퇴근한 이후 밤에 기계를 만질 수 있었기에 제가 부탁을 했습니다.

앰프 전면판넬에 구멍을 내야 하는데 너희 공장 기계 좀 쓰자고요...   

그래서 자재를 가지고 한밤중에 그 친구가 있는 공장을 방문했지요.

그런데 그 큰 기계가 구멍 하나 뚫지 못해 허덕이고 열이 펄펄 납니다.

10미리 알미늄 판넬인데 노브가 들어가냐 하니 뚫어야 하는 구멍의 지름이

좀 컸습니다.

친구는 "이러다 기계 망가진다....큰일 난다.....나 짤린다....."하면서

밤새 고생한 끝에 겨우 작업을 마무리 했습니다.

그 이후로도  밤에 몇 번 찾아가 기계를 빌려 썼지요.

 

그때는 케이스 까지 모두 수작업으로 만들어야 했던 시기 입니다.

그 고생해서 만든 앰프가 이것입니다.

 

<INT 50.2>

나사 사장님, 죄송하고 감사 드립니다.

이때를 생각하면 도와줬던 친구에게 고맙다는 생각이 항상 듭니다.

그 친구는 얼마 되지 않아 미국에 가서 결혼하고 잘 정착해서 산다는 소식을 들었지요.

이렇게 해서 리비도(구 소리사이)가 탄생합니다.

 

돌이켜 보면 수 많은 일들을 겪었고 아마 앞으로도 그러할 것입니다.

비인기 산업인 오디오 시장에서 먹고산다는 것은 인생의 많은 부분을 포기해야 하고

실제로 창업했다가 사라지는 업체들을 수 없이 많이 봤습니다. 

오디오를 너무 좋아해 미치지 않고서는 이 시장에서 버틸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내가 일반적인 회사원 이었다면 집도 사고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살지 않았을까?

또는 제대하지 않고 완전 말뚝 박았으면 내 인생이 어떻게 달라졌을까....   

그래서 한 때는 부대에 재입대해 다시 출근하는데 몇 개월이 지나도 월급통장에

돈이 안들어오는 꿈을 꾼적도 많았고 그 정도로 월급쟁이가 한없이 부럽기도 했습니다.

어려울 때는 라면 하나로 하루를 버텨야 했던적도 많았고 월세를 못내 거리 밖으로 

쫓겨나기도 했습니다.

이런 고난의 행군같은 시련이 제 인생의 반은 넘었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 남들 처럼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했고 가난이라는 의미보다 굶는다는 것이 더 두려웠습니다.

 

그럼에도 저를 붙잡아 준것이 앰프에 대한 욕심이었습니다.

사람은 욕심을 버리면 죽습니다.

그러니 앰프 연구에 대한 저의 욕심이 저를 살렸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지요.

이렇게 어려움이 파도 처럼 더가오는 현실 속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허리띠를 졸라 매는 것,

이것 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아직도 통신요금이 1만원 정도 나오는 폴더폰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스마트폰 사용은 저에게 사치이자 저 세상 물건입니다.

제가 돈을 쓰는 경우는 오로지 앰프설계나 제작에만 국한됩니다.

통장 잔고가 언제 또 빵 원이 될지 모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습니다.

 

지금 시점은 고생 끝에 제가 만족할 정도의 오디오 라인업이 구축되어

베이스가 단단해지고 있다는 것이 그나마 위안이 됩니다.

이번 저의 인생은 오디오, 앰프 연구가 전부였던 것 같습니다.

그것을 누가 알아주고 말고를 떠나서 말이죠...

그래서 스스로 이번 생은 망했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습니다.

가끔 제가 만든 앰프로 음악을 들으면 이런 생각이 듭니다.

 

"누가 만들었는지 소리 참 좋네,   그런데 왜 눈물이 날까?"   

 

 

 

 

 

리비도 같은 앰프는 후대에 저 처럼 미친 놈이 나오지 않으면

인류역사의 진정한 마지막 하이파이 제품이 될 것이고

현재 상황으로 보면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농후해 집니다. 

안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