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는 왜 음악을 듣는가?
심장을 갖고 있는 동물들은 본능적으로 심장의 리듬에
생존사이클이 맞춰져 있고 그런 이유로
리듬에 대한 의존률을 높여갑니다.
리듬은 역사적으로 음악의 시초이고 그 리듬의 발전 아래
지금의 음악이 발생합니다.
결국 음악은 삶의 한 부분이고 그 질을 높여주며
그런 이유로 임산부는 태교음악을 아이에게 들려주는 것입니다.
음악과 건강에 대한 많은 논문들이 있는데
요즘같이 음악을 가볍게 듣는 문화속에서 한 번 더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음악을 감상할줄 모르는 사회에서
범죄율과 우울증에 따른 자살률이 높다고 합니다.
(펌)
모든 인간에게 음악을 사랑하는 능력은 세상에 태어나기 이전부터
모든 인간의 내부에 프로그램이 되어 있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음악을 즐길 수 있는 능력은 그것이 학습된 행동이 아니라
세상에 태어났을 때에, 아니 그 이전 자궁 내에 있을 때(임신 3~4개월이
경과하면 태아는 이미 듣기 시작합니다)에도 좋은 소리에 대하여 즐거워하고
나쁜 소리에 대하여 불쾌하게 받아들이는 반응은 이미 존재해 왔기 때문입니다.
즉 음악을 즐길 수 있는 능력은 인간의 기본적인 조건들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아마도 ‘건강한 삶’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 듯합니다. ‘건강한 삶’이란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인
측면이 모두 포함되지만 어느 쪽이나 ‘조화와 균형’을 그 기본 조건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신체적인 건강이란 세포와 세포간, 조직과 조직간, 기관과 기관간의 조화로움이 유지되어야 성취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정신은 3가지 요소로 구성됩니다.
즉 생각(사고), 감정 그리고 행동입니다. 따라서 정신적인 건강이라 함은 이 3자간의 조화와 균형에 의하여 성취됩니다.
사회적인 건강이란 사회를 구성하는 한 개인으로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가 얼마나 조화롭고 균형이 잡힌 관계를
유지하느냐에 따라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건강한 삶’의 기본적인 요소는 ‘조화와 균형’이며 음악의 가장 기본적인 특성이 바로 ‘조화와 균형’이기 때문에
음악이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기능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에 좋은 음악을 가까이 하고 이의 교훈을 받아들인다는 말의 의미는 즉 모든 인간의 내부에
프로그램이 되어 있는 ‘조화와 균형성’을 강화시킨다는 의미가 될 수 있습니다.
음악의 역사가 바로 인류의 역사와 그 맥을 같이 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류의 역사는 바로 음악의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어느 나라, 어느 문화, 어느 시대에도 음악이 존재하지 않았던 적은 없습니다.
고대 아프리카인, 북미와 남미의 인디안, 그리고 오세아니안 종족들과 같은 원시집단에서도
음악이 있었고, 중국, 인도, 한국, 일본의 고대 사회에서도 역시 음악이 있었습니다.
초기 고대의 음악에 관한 저자들은 음악을 수학적, 이론적인 방식 또는 철학적, 윤리적 방식으로 다루었습니다.
예를 들면, 피타고라스(B.C. 582-500)는 철학자이며, 수학자이었는데, 음악은 옥타브와 5도 음정만이 가장
순수한 협화음이라는 음악적인 비율을 발견하여 설명한 바 있고, 플라톤(B.C. 427-347)과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B.C. 384-322)는 음악의 윤리적 가치에 많은 관심을 두어
그들의 저서 [국가론]이나 [정치학]에 음악에 대한 개념과 사회에 있어서 음악의 기능에 관한 언급이 있습니다.
이후, 로마네스크(500-1000), 고딕(1100-1430), 르네상스(1430-1600), 바로크(1600-1750),
고전주의(1975-1820), 낭만주의(1820-1900)를 거쳐 20세기 현대 음악에 이르고 있습니다.
동양에 있어서도 역시 음악에 대한 기록은 긴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고대 중국의 [예기(禮記)]에 “음악의 도는 정치와 통한다”라는 기록이 나옵니다.
즉 고대 중국에서는 정치를 할 때의 원칙과 음악적인 원칙을 같은 것으로 보았다.
‘음’이란 곧 말의 변형된 형태이며, 따라서 백성들 사이에 유행하는 노래를 통하여
백성들의 마음을 알고 이것을 정치에 반영하였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음악이란 즉 ‘인간의 삶’이라는 심각한 의미가 있습니다.
[논어]에도 음악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공자께서 어떤 사람과 함께 노래하시는데, 그 사람이 잘 부르면 반드시 다시 하게 하셨고,
그 후에 따라 하셨다.” 맹자의 가르침은 보다 더 구체적입니다.
맹자께서 “왕께서 일찍이 음악을 좋아한다고 말씀하셨다는데 그러한 일이 있었습니까?”하고 물으니
왕이 얼굴빛을 달리하여 말하기를 ‘나는 옛날에 선왕이 지었던 음악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요즈음 유행하는 속악을 좋아할 따름입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맹자께서 ’왕께서 음악을 많이 좋아하신다면 제나라가 이상정치를 실현하는 것을 기대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오늘 날 유행하는 음악이 옛날에 불렸던 음악과 같다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답변하셨다.
왕께서 “그 까닭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하니 맹자께서 “혼자서 음악을 즐기는 것과 여러 사람이 함께 들으면서
즐기는 것은 어느 쪽이 더 즐겁습니까?” 하고 되물으셨다.
왕이 “다른 사람과 함께 음악을 들으며 즐기는 것이 더 즐겁습니다“라고 답변하였다.
이 문답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음악은 그것이 속악이든 고전음악이든지 가릴 것이 없이
모두 인간의 삶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즈음 표현으로 한다면 유행가든지 고전음악이든지 가릴 것이 없이 어떠한 종류의 음악이든지
모두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해 줄 수 있다는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경(詩經)]의 시를 내용적으로 분류해 보면 “풍(風)”, “아(雅)”, “송(頌”)의 세 종류로
나눌 수가 있는데 “風”은 각 지방의 민간 가요이며 “雅”는 조정에서 연주되던 음악이었으며, “頌”은 종묘에서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며 부르던 노래였습니다.
즉 “속악”이든 “궁정음악”이든 그것이 인간의 마음을 즐겁게 해 줄 수만 있다면 모두 중요하다는 의미가 됩니다.
왜 우리가 음악을 가깝게 하고 우리 내부에 존재하는 ‘진선미(眞善美)’를 키워나가야 하는가가
고전의 가르침을 통하여 너무나 명백하게 배울 수 있습니다.
서울대학교병원
소아청소년정신과 조수철 교수
2, 우리는 무엇으로 음악을 듣는가?
1부에서는 음악을 듣는 근본적인 이유를 말씀드렸지만
2부에서는 어떻게 인류는 음악을 표현하고 들어왔는가에 대해
말씀 드립니다.
보통 현대 대중음악의 기원은 아프리카 음악이라 보는 관점이 많습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지금 대중음악의 뼈때는 아프리카 음악이라 해도
사실은 전 세계적으로 토속적인 음악문명이 있었습니다.
이 최초의 음악은 1부에서도 말씀 드렸듯이 생존을 위한 도구였습니다.
다른 세력으로 부터의 보호를 위해서 그 부족은 단결력과 용기를 불어넣기 위해
음악(리듬)을 사용했습니다.
마치 그것은 지금의 군가가 된 것과 같습니다.
이렇듯 우리 인류는 자신들의 종족을 보존하고 지키려는 수단으로 음악을 많이 사용했습니다.
그러다 평화의 시간 속에서는 마을단위의 악단이 자생적으로 발전합니다.
특히 유럽 지역은 지금까지도 이런 고유의 음악문화를 가지고 있는 나라들이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릴적 부터 아주 자연스럽게 라이브 음악을 접하게 되고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 자아형성의 중요한 밑거름이 됩니다.
그런데 유럽과 달리 우리나라는 근대의 급성장이라는 환경 때문에
문화의 뿌리가 깊게 내려질 시간이 없었고 그것은 매우 안타까운 결과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극것은 극한의 이기주의 입니다.
예전에 목욕탕에 가면 처음 보는 사람에게 등 좀 밀어달라는 이야기를 꺼내기가 정말 쉬웠고
극장에서 영화를 보다 속시원한 장면이 나오면 처음 보는 사람인데도 마주고보 웃으며
탄호성과 박수가 터져나왔지요...
우리나라도 마을 단위로 공동체가 형성되었을 때는
옆집 숟가락이 몇 개 인지 알 정도고 동네 사람들이 아닌 사람이면
간첩인가 하여 신고 하기도 했을 정도로 모든 동네 사람들이 잘 알고 있을 때가 있었는데
빠른 도시개발로 이사하는 횟수가 늘어났고 아파트 거주형태의 패턴이 자리잡히자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아랫집, 윗집 사이의 층간소음은 살인이 벌어질 정도로
심각해 졌습니다.
하지만 이런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음악입니다.
아무리 세상이 빠르게 변할 지라도 우리의 몸 속에는 우리 민족의 DNA가 살아 있습니다.
시간이 좀 지났지만 지만 2002년 월드컵 때를 보면 아직 우리는 하나라는 마음이 있었고
작년에도 그런 일이 있었지요.
이렇듯 음악은 서로의 결속력을 다지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힘들 때 서로를 도와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이 중요한 음악문화가 오디오란 것이 나타나면서 같이 즐기는 문화가 아닌
혼자만의 문화 취미생활이 되고 있습니다.
그래도 예전에는 오디오로 서로 모여 음악감상을 하는 행사도 종종 있었는데
헤드폰(이어폰)이 나오면서 이마저도 완전히 단절되는 현상이 옵니다.
이런 현상은 오디오 뿐만이 아니라 여러가지 형태의 것에서
점점 늘어가기 시작합니다.
혼술...혼밥 등....
그래서 저는 오디오 하시는 분들께 집에서 오디오로 음악듣는 것도 좋지만
라이브 연주회장도 많이 경험해 보시란 말씀을 자주 드립니다.
그럼 혼자 듣는 느낌과는 또 다른 즐거움이 있기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각종 종교 행사에서의 음악 역시 좋은 음악 소스가 됩니다.
그런데 지금....
왜 이렇게 세상이 변했을까요?
그 줄기를 따라가다 보면 "자본주의"라는 것이 나옵니다.
자본주의가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현재의 자본주의 형태는 너무 드라이 합니다.
휴머니즘이 조금이라도 녹아있는 형태였다면 이렇게 까지 진행되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시대의 음악은 우리 서로의 존재감과 결속력을 키우는데 매우 중요하면서도
삶의 질을 높여주는 좋은 거름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오디오로 음악 듣는 것도 좋지만
1년에 한 두 번쯤은 여러 사람과 함께 라이브 음악도 들어보시고요
그것이 구지 음악이 아니더라도 연극, 발레 등 많은 형태의 문화를 경험해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십 수년 전 레인보우 인티앰프 시청회 때 100여명 넘는 분이 오셔서 들어오지 못하신 분들께
죄송한 마음도 있었는데요....
지금은 더 잘 정리된 시스템인데도 불구하고 구경하러 오시는 분 한 번 뵙기가 굉장히 힘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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