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요/리/사> 그러나.....
그동안 사람들이 왜 점점 이상해지나 했더니
아주 오래전 부터
물밑에서 못된 교육프로그램을 돌리고 있었다
정말 무서운 놈들이다.
지금 당장 교육혁명을 해도 모자란 판에
이렇게 나치 파시즘 양성 교육을 해왔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
그나마 이런 사실들이 수면위로 떠오르고
정상화의 길로 만드는 일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그 골의 깊이가 새삼 너무나 어렵게 느껴진다.
그런데
이런 줄세우기 서열화 교육 시스템을 적극 활용한
프로그램이 있었으니 이것이 흑백요리사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세프들의 식당에서
잠사나마 요식업계의 불황을 극복하고
내수에 도움이 되었다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그 과정은 그리 석연치 못하다.
두 사람의 심사위원이 그 많은 요리를 평가 한다는 것.
그 자체가 아이러니하다.
라면 하나를 먹어도 언제, 어디서, 누구와 먹느냐에 따라
그 맛이 달리 느껴지는 것이 입맛의 기본인데
그들은 신(神)인가보다.
서글픈 사실은 이 프로그램의 시청률이 높다는 것이다.
서열화된 교육을 받고 자란 우리들....
사회에 진출해서도 이 연결성은 지속된다.
우리는 이미 서열화의 속된 문화에 젖어 있었고
남을 밟고 올라야 진정한 승리를 거둔다는 얄팎한
생각이 세뇌 당한 머릿속에 굳건히 자리잡고 있다.
특히 미국식 서열화 교육을 받는 국가들에서
이 프로그램이 더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은 깊게 생각해보아야 한다.
지금 미국을 보라... 어떤가?
오죽하면 부제가 <요리 계급 전쟁>이다.
음식은 관심 밖이다.
누가 떨어지고 올라가는가에 대한 관심만 충만하다.
이 프로그램의 제작자는 이런 사회의 현실을 잘 파악하고
어떻게 하면 시청률을 올릴 것인가에 대한 방법을
너무 잘 알고있고 결과적으로 성공했다.
언제까지 이런 비정상적인 흐름이 이어질지 걱정된다.
사람이 아프면 약국이나 병원을 찾는다.
그런데 이런 곳이 아닌 식당을 찾는다면 어떨가,
이 식당에서 한 끼를 먹으면 아픈곳이 낫는다.
만약 내가 세프고 제작자였으면 이런 경연 요리대회를 할 것이다.
손님은 병원에서 받은 진단서를 가져오고 세프는 그 진단서를 보고
음식을 만든다.
혀만 느끼는 쾌락의 시대는 너무 속보인다. 이제 그만해야 한다.
음식은 약이다 라는 개념을 도입해 공부해야 한다.
법 보다 주먹이 가깝다.
이런 생각 때문에 아직까지도 세치 혀에만 쾌락을 준다.
현실에서는 이래야 피드백이 빠르기 때문이다.
이것을 타파하고 도를 닦는 심정으로 음식과 건강에 대한 관계를
공부해야 한다.
허준 보다도 더 공부해야 하고 동의보감은 물론 새로운 치료제가 될 수 있는
재료를 찾아 세계를 누벼야 한다.
상상만으로드 힘들고 고된 일이다.
진정한 세프는 바로 이런 사람들이 아닐까,
이런 세프들을 모아놓고 경연대회를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나는 세프도 아니고 의사도 아니다.
그리고 이렇게 고난의 인생을 선택하는 사람은
미친자 소리를 들을 것이다.
그런데 나도 그런 미친자의 마음으로 병을 치료하고 있었다.
마음의 병을....
지친 심신을 달래주고 외로운 사람들의 친구가 되어주는 음악.
언제나 곁에 있지만 음악이 임팩트한 치료제라는 것을 잘 모르는
현대인들에게 강력히 말해주고 싶다.
위로를 받고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것 중
가장 큰 것이 음악 이라는 것을...
그래서 음악은 자신의 추억이고 거울이다.